청주 정북동 토성은 미호천의 남쪽 평지에 자리한 금강유역 유일의 네모꼴 토성이다.
둘레 676m 크기의 이 토성은 1.6~1.7m의 간격으로 성벽의 안팎에 나무 기둥을 세우고 사이에 나무판자로 구분하여
흙과 진흙을 교대로 다져 쌓은 판축 기법으로 축조하였다.
성벽의 중앙에는 문을 두었는데, 특히 남문과 북문은 성벽을 어긋나게 만들어 옹성(甕城, 성문을 공격하거나 부수는 적을 측면과
후방에서 공격할 수 있는 시설)의 구실을 하도록 하였다.
네 모서리에는 높고 넓은 각루(角樓) 터가 있고, 이 모서리와 문터 사이마다 치성(雉城, 성벽의 바깥으로 덧붙여서 쌓은 벽)을
하나씩 만들어 방어력을 높였다.
성벽 바깥에는 너비 25m의 해자(垓子, 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성벽의 둘레를 감싼 도랑)를 만들어 물을 채웠다.
1세기경에는 이곳에 목책(木柵, 말뚝을 박아 만든 울타리)으로 만든 방어 취락이 형성되었고,
3세기에 이르러 지금의 토성이 축조되었다. 통일신라시대에는 바깥의 해자를 메우고 건물을 세우기도 하였다.
이 토성의 축조 연대와 입지 조건은 서울 풍납동 토성과 유사하다.
우리나라에서 성곽이 본격적으로 축조되기 시작한 초기 단계의 유적으로 보존 상태가 좋아 귀중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1990. 12. 14. 충북도 기념물 제82호로 지정되었다가, 1999. 10. 28. 사적415호로 승격 지정되었다.
청주시에 관리하고 있다.
이 토성의 정확한 축조연대를 알 수 없으나, 다만 영조 20년(1744)에 상당산성의 승장으로 있던 영휴가 쓴 《상당산성고금사적기》에 다음과 같은
기록이 보인다.
1996~1997년 서쪽 성벽 일부와 서문터에 대한 발굴조사가 실시되고, 1999년에는 성내 동반부와 남반부에 대한 발굴조사를 실시하였다.
그 결과 성벽의 벽체부분은 안팎으로 나무기둥을 세워서 내부를 다지는 공법이 채택되고, 기단을 별도로 마련하지 않고 벽체의 안팎에 다시 기둥을 세워
축조한 방식을 취하고 있음이 밝혀졌다.
서문터는 굴립주에 의한 문이 있었다가 후대에 냇돌적심을 이용한 초석 기둥으로 대체되었다.
그 외에도 성안에서 주거유구, 기둥구덩유구, 길 유구, 냇돌무더기 유구 등이 확인되고, 성외 동남부 및 남문 바깥에서 해자가 확인되었다.
성벽의 높이는 2.7m~4.5m, 성벽의 윗부분 폭은 2m, 성벽의 밑부분은 12.5m~17.5m이다.
성벽의 길이는 동벽 185.5m, 서벽 165m 이다.
이곳은 현존 유구의 상태가 가장 완전한 형태를 보여주고 있을 뿐만 아니라, 토성의 구조나 출토 유물 등으로 미루어 한국 초기의 토성 연구에 있어
매우 귀중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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