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 남섬 ‘밀포드 트레킹’ 답사기
뉴질랜드 남섬의 서남쪽
피요르드랜드 국립공원에 자리잡은 트레킹 코스
'밀포드 트랙'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산길'로 손꼽힌다.
<아래 내용은 2010. 1. 15.~24.까지 뉴질랜드 여행 중 4박5일간
밀포드 트레킹을 체험한 ‘김철우 부산시민등산아카데미 대표’의 답사기로써
‘10. 2. 11.~25.기간 중 부산일보에 3회에 걸쳐 연재된 내용이다.>
이끼류와 양치류의 천국 밀포드 트레킹 숲, 녹색의 원시림이 싱싱한 자연의 아름다움을 증언한다.
산길은 시작부터 하늘을 가린 울울창창한 숲이다.
나무가 얼마나 큰지 위쪽을 쳐다보아도 끝이 가늠조차 되지 않고 밑동도 우람하기 그지없다.
걸을수록 빠져드는 원시림의 최면 속으로
이끼의 천국이다.
나무 마다 이끼가 덮었고 숲 속은 맨 땅까지 온통 이끼다.
여러 꼴의 이끼가 나무를 뒤덮어 모든 나무가 고목처럼 보인다.
숲 속 길만은 검은 흙이 잘 다져졌다.
줄기에 붙은 이끼를 눌러보니 손가락 두 마디가 쑥 들어간다.
등산은 봉우리라는 하늘에 맺힌 점을 향해 가는데 트레킹은 한 지점에서 다른 지점까지 선을 따라 이동한다.
트레킹은 이동이 끝날 때까지 뚜렷한 절정은 없지만 이어지는 즐거움과 감격에 오랫동안 휩싸인다.
숲이 얼마나 짙은지 햇볕까지 걸러진다.
우리를 지배하던 감성과 이성의 팽팽한 균형이 슬며시 무너진다.
한없는 부드러움이 봇물처럼 밀려들면서 야릇한 쾌감의 환상에 빠져든다.
시원한 그늘에서 즐기는 한여름의 낮잠 같은 그런 시간을 이 숲이 안겨준다.
밀포드 트레킹은 테아나우 호수의 선착장에서 시작해 다시 배를 타야하는 다른 선착장까지 57.4㎞다.
첫날은 선착장서 산장까지 1.2㎞를 가서 숙박,
둘째 날은 다음 산장까지 16㎞,
셋째 날은 그 다음 산장까지 19.6㎞,
넷째 날은 종착지인 선착장까지 21.6㎞다.
한국의 둘레길은 큰 산 기슭을 빙 도는데 밀포드 트레킹 57.4㎞는 천야만야한 직벽의 바위산과 바위산이 마주보는 협곡을 걷는다.
호수 선착장에서 내리자마자 긴 사각형 통에 소독약물이 있다.
누구든 이 통에 신발을 소독해야 한다.
세계 각국에서 온 여행객들로부터 묻어올지 모르는 풍토병을 예방해 숲을 보호하기 위해서다.
크린턴이란 강에 걸린 출렁다리를 건너는 것으로 본격적인 트레킹의 막이 오른다.
숲 길은 걸을수록 강렬한 원시성의 최면에 빠진다.
겨울에는 눈이 많이 온다고 하는데 풀은 겨울에도 죽지 않는지 대단히 크고 무성하다.
트레킹 넷째 날은 비가 내렸다.
안개와 비에 젖어 어둠침침해지자 숲은 햇볕이 쏟아질 때와는 전혀 다른 풍경이다.
키 큰 고사리 등 양치류까지 숲을 이뤘고 덩치 큰 풀, 이끼 덮은 채 하늘로 뻗은 어마어마한 나무, 이끼가 감싼 채 넘어져 즐비하게 널려있는 고목.
영화 '쥬라기 공원'의 숲이 풋풋하게 살아나고 '반지의 제왕'에 나오는 움직이는 나무가 금방 눈앞에 나타난다.
'아바타'의 주인공들이 괴상한 새를 타고 훨훨 날아다닌다.
괴기롭고 음산한 원시의 숲은 온갖 환영과 착각으로 눈앞에서 일렁댄다.
숲길 만이 아니다.
숲 없는 빈터, 강이나 냇가도 정말 위대한 풍광에 어리둥절하게 된다.
셋째 날은 1,154m의 봉우리를 오르는데 길이 야생화가 만발한 풀밭 기슭에 지그재그로 나있다.
산길 앞은 눈을 인 봉우리가 홀립하고 아래편 골짜기는 짙은 숲, 호수, 내가 어울려 끝 간 데 없다.
이 곳 숲에는 소나무나 참나무류가 보이지 않는다.
새는 있지만 산돼지나 곰 토끼 등 짐승이나 뱀 개구리도 없다.
포유류는 박쥐 뿐이란다.
이 트레킹 코스는 뉴질랜드 피요르드랜드 국립공원에 포함돼 있는데 하루 50명만이 걸을 수 있다.
산길에는 담배꽁초나 비닐, 종이 조각 하나 없다.
이곳 숲길은 너무 정갈하고 엄숙해 먹던 과일 씨까지도 싸서 주머니에 넣게 된다.
신비롭고 아름다운 숲에 샌드플라이라는 날파리 같은 게 사람 피를 빨아먹는데 물린 곳을 긁으면 며칠동안 무척 가렵다.
아름다운 자연을 보호하기 위해 인간의 접근을 막으려는 신의 섭리인가.
하지만 선과 선을 이동하는 유쾌함이 추억으로 여울지는 밀포드 트레킹이다.
바다인 밀포드 사운드로 떨어지는 폭포, 크루즈선이 폭포 밑에서 물바라기를 한다.
"야 저것 봐라 이번에도 폭포 천지다" "30개는 넘겠다." " 기슭 전체가 폭포잖아."
사방이 툭 트인 풀밭이나 냇가로 나오면 갑자기 탄성이 쏟아지고 이야기가 봇물을 이룬다.
숲 속에서는 조용하기 이를 데 없는 사람들이 폭포에 그만 이성을 잃어버린다.
바위벽 하얗게 수놓는 물줄기의 향연
비가 내리거나 눈 녹은 물은 기슭의 낮은 곳으로 흘러 실개천을 이루지만 이곳의 빗방울이나 눈 녹은 물은 개천으로 흐르지 않고 물을 모아 바위 틈새로 쏟아져 내려간다. 숲이 없는데다 거의 직벽이라 그대로 폭포가 된다.
뉴질랜드에도 알프스가 있는데 남섬 알프스를 서던 알프스라 한다.
이 산맥에는 3,000m 이상의 산들이 거하게 홀립했다.
여기 산은 이상하다. 대부분이 봉우리는 말할 것 없고 3분의 2 이상이 바위로 이루어졌다.
어떤 산은 땅 바닥에서부터 봉우리까지 온통 바위다.
설악산의 공룡능성이나 용아장성보다 더 날카롭고 까마득하게 솟은 봉우리가 푸른 하늘과 한바탕 힘겨루기를 하는 것 같이 너무나 역동적이다.
천야만야 낭떠러지를 지닌 바위산이라 홈이 파인 곳은 모두 물길이다.
급경사라 물길은 숲이 없어 그대로 드러난다.
만약 비가 많이 오면 산 전체가 온통 폭포로 바뀐다.
이곳 폭포는 생성·소멸 한다.
비가 오거나 눈이 녹으면 천 길 낭떠러지에 어둠을 가르는 하얀 달빛 같은 폭포가 여기저기서 살아난다.
폭포가 쏟아내는 물방울이 춤을 추자 하얀 박꽃 같은 비말이 온 사방에 뿌린다.
하지만 가뭄이 심해지면 그저 평범한 바위로 되돌아가는 등 영고성쇠를 되풀이 한다.
폭포의 높이도 20∼30m는 쳐 주지도 않는다.
거의 200m가 넘는데, 눈이 다 녹으면 말라버려 없어지는 폭포라 이름조차 없다고 한다.
여기 산들은 하나같이 산꼭대기에는 눈이 이고 있다.
얼마나 많은 눈이 쌓였기에 수십 가닥의 폭포가 생기고 그 폭포에 쉼 없이 물이 쏟아져 내리는 걸까.
어떤 산은 길고 긴 실폭포가 하얀 명주 가닥을 풀어 놓은 것 같고 어떤 산은 옥양목을 꼭대기에서 땅까지 수십 폭을 내렸다.
폭포도 여러 꼴이다. 밋밋하게 급하게 쏟아지기도 하고 여러 번 꺾이고 부딪치면서 땅으로 떨어지기도 한다.
꼭대기에서 흘러내리다 중간에서 사라진 뒤 다시 바위를 뚫고 튀어 나와 하얀 용수철처럼 허공으로 비산한 뒤 땅으로 내려앉는 폭포. 하얀 실비단 폭포가 밑에서 솟구치는 바람에 땅에 닿지 못하고 그대로 하늘로 솟아올라 뿌려지기도 한다.
맥킨논 기념탑(1,154m)을 지나 만나는 대피소(Pass Hut)에서 점심을 한 뒤 산기슭을 내려가자 실폭포 천지다.
1,937m의 엘리어트산을 중심한 높은 봉우리가 바위 직벽으로 땅까지 이어졌는데 바위벽 틈마다 쏟아지는 폭포가 30개가 넘는다.
바위 병풍에 하얀 명주실 수십 가닥이 바람에 나부끼는듯 하다.
뒤는 벌룬산(1,817m) 기슭인데 이곳에서도 몇 개의 실폭포가 하늘거리며 맵시 경쟁을 한다.
청자 빛 하늘, 골짜기를 울리는 폭포, 하얀 눈을 이고 있는 연봉, 연녹색 초원에 피어난 야생화 꽃밭이 빚은 이 엄청난 자연에는 우리들 밖에 없다.
신기하게도 물길을 따라 길이 열린다.
물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가듯 산길도 이 물길을 따라 용하게 낮은 곳으로 간다.
세 번째 산장까지는 가파른 계곡이라 나무계단이 이어진다.
계단 옆 계곡은 온통 낙차 20∼30m 폭포가 수 없이 이어진다.
폭포 소리는 메아리를 만드는 입체 음향이다.
3번째 산장에서 40분 거리에 있는 서덜랜드 폭포는 낙차 580m로 세계에서 다섯 번째 높다.
폭포 앞 50m 주변까지 비말이 이슬비처럼 쏟아진다.
폭포 물줄기 뒤로 한 바퀴 도는 길까지 있다.
높이만이 아니라 어떻게 저리도 많은 물이 쏟아지는지 놀라울 따름이다.
두 번째 산장에서 얼마가지 않아 만나는 퀸틴 폭포도 건너편 바위벽을 하얗게 장식하는데 낙차 230m다.
마지막 날에도 맥케이 자인안트 등 이름 있는 폭포와 이름 없는 폭포가 장마 속인데도 하얀 빨래처럼 그렇게 널려 있다.
바다로 떨어지는 폭포가 해협 양쪽 여러 개 걸렸다.
크루즈가 폭포로 다가가 물바라기를 한다.
표효하는 폭포가 풍랑으로 거칠어진 바다를 압도하면서 긴장과 스릴을 안긴다.
신비한 느낌이 나는 맥킨논 산정에 있는 산상호수
밀포드 트레킹은 바다 같은 호수에서 시작하고 호수 같은 바다에서 끝난다.
호수로 난 길이 트레킹 출발점이다.
테아나우라는 작은 도시 앞에는 테아나우 호수가 있다.
이 도시에서 20분 거리의 선착장에서 배를 탄다.
밀포드 트레커들만 나르는 이 배는 얼음판을 미끄러지듯 부드럽게 나아간다.
물빛이 서양 여인의 푸른 눈처럼 푸른 우유빛이다.
누군가가 "이게 진짜 밀키블루"라고 말한다.
갑판에는 각국에서 모인 50명이 트레킹의 설레임과 행복한 기대에 푹 빠져있다.
한국은 지금 한겨울인데 여기는 한여름. 하지만 호수를 달리는 배는 시원한 자연 냉장고다.
산으로 감싸인 짙푸른 호수 물빛에 '탄성'
제일 깊은 곳이 400m나 된다는 테아나우 호수를 산들이 멀리서 감쌌다.
배가 깊숙이 들어가자 높고 힘찬 바위산이 하얀 갈기를 휘날리는 준마처럼 펄펄 뛰며 달려온다.
눈 봉우리는 햇볕을 받아 이리 뒤척 저리 뒤척거리며 하얀 빛을 사방에 뿌린다.
한 시간을 가도 호수는 여전하다.
호안선 길이가 500㎞나 된다는
이 호수는 저수지나 연못만 보아온 우리들에게 놀람과 감동을 안긴다.
한시간 반을 탔을까 호수 가장자리 허술한 선착장에 배가 조심스럽게 닿는다.
이 곳 글레이드 와프가 밀포드 트레킹의 첫 뭍길이다.
어제 내린 공항에서 우리가 첫 번째 만난 것은 꼭대기에 눈이 하얗게 쌓인 산,
두 번째는 크기가 가늠되지 않는 호수,
세 번째는 호반 울창한 숲에 제비꽃 같이 소박하고 깨끗한 집이 있는 작은 도시.
공항은 퀸스타운, 산은 1,974m의 세실피크, 호수는 와카티푸, 도시는 퀸스타운이다.
하룻낮과 하룻밤 동안 비행기를 3번이나 갈아타고 도착한 뉴질랜드 남섬 퀸스타운.
'여왕이 사는 마을'은 이런 곳인가.
아름답다는 말 밖에 할 게 없다.
다 같이 사람이 사는 곳이지만 한국과는 달라도 너무 다르다.
모든 밀포드 트레킹은 퀸스타운에서 출발한다.
버스를 타고 와카티푸 호수를 오른편에 끼고 돌아 공항을 지나서 다시 호수를 오른편에 두고 한 시간 정도 달려야 겨우 호수와 이별이다.
드넓은 호수와 함께 달리는 길은 가슴의 두근거림이 이어진다.
환상적이다.
이곳은 여름인데도 우리나라처럼 더위가 기승을 부리지 않고 거닐기 좋은 초가을 같다.
호수가 끝나자 온통 번번한 기슭인데 전부 풀밭이다.
인공조림을 했는지 숲이 일직선이거나 띄엄띄엄 무더기를 이뤘다.
숲길 입구의 밀포트 트랙 안내판에서 20분을 걸어 첫 번째 산장 글레이드 하우스에 도착, 첫날밤을 위한 여장을 푼다.
둘째 날부터 양쪽에 천야만야하게 솟은 바위산 사이의 협곡을 걷는다.
넓은 골짜기가 아닌데도 크고 작은 호수들이 여기저기에 숨어있다.
숨은 호수, 거울 호수라는 이름도 있다.
뉴질랜드는 호수의 왕국이다.
남섬에만 440개, 북섬을 포함하면 800개나 된다.
깊이 462m의 하우로코나 호수, 호안선 길이가 500㎞나 되는 테아나우 호수,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테카포 호수….
세계에서 샘물이 두 번째로 깨끗한 호수(제일 깨끗한 샘물은 남극)도 남섬에 있다.
셋째 날은 산을 오르는 코스인데도 강과 호수가 협곡이 끝날 때까지 숨바꼭질을 한다.
특히 산을 오르기 직전에 있는 민타로 호수는 아담한데다 너무나 맑아 거울을 보는 듯하고 이곳에 들어선
사람까지 호수와 잘 어울려 선하디 선한 자연의 한부분이 된다.
맥킨논 기념탑이 있는 해발 1,154m의 봉우리에 자리잡은 산정 호수는 주변의 높은 산 그림자와 구름까지 어리어 아름답기 그지없다.
호수의 제국이라 이런 꼭대기에도 규모는 작지만 그림 같은 호수가 하늘을 껴안고 있다.
넷째 날은 내와 폭포를 품은 호수를 지나 강과 바다가 만나는 선착장에서 트레킹은 끝난다.
여기서 배를 타고 나가면 물개와 돌고래, 폭포가 함께 있는 바다 밀포드 사운드다.
밀포드 사운드 마을에서의 하룻밤이 트레킹을 마감하는 마지막 밤이다.
다시 올 수 없는 밀포드 트레킹. 깨어나고 싶지 않은 한 여름밤의 아름다움 꿈이다.
안녕이란 이별을 가슴에 새긴다.
'@ (I·F)情報箱子'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강원/경남/제주]雪岳山, 智異山, 한라산 등산지도 (0) | 2011.12.02 |
---|---|
[펌] 페루 마추픽추 (0) | 2011.06.29 |
[제주]올레길 1~18코스별 세부내역 (0) | 2011.05.24 |
영국 BBC선정 죽기전에 꼭 가봐야 할 곳 (0) | 2011.04.15 |
순간 포착 명작모음 (0) | 2011.01.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