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U)全羅道

[전남 강진]다산초당 탐방

마하칼라 2012. 3. 11. 22:38

 

만덕산(전남 강진) 기슭에 자리한 다산초당에서 

 

* 언제 : 2012. 3. 10(토)

* 누구와 : 옆지기와 둘이서 싱글벙글산악회 회원들과

* 날씨 : 맑음, 여행하기 좋은 기온

* 일정 : 1박2일 섬여행(강진, 완도, 보길도, 노화도), 완도 썸모텔에서 1박

※ 강남구 신사동(신사전철역 5번출구앞) 07:30분 28인승 리무진버스출발, 전라남도 강진군 도암면  다산유물전시관 11:55분경 도착

 

▼ 다산유물전시관앞 안내판

▼ 두충나무숲

▼ 두충나무숲

 

 

▼ 다산초당 오르는 길

▼ 다산초당

 

 

 

 

 

 

▼ 연지석가산

 

 

 

 

 

 

▼ 다산초당에서 백련사 가는길

▼ 다산초당에서 백련사가는길

 

 

▼ 해월루

▼ 해월루

 

 

▼ 해월루에서 본 강진만

▼ 해월루에서 본 강진만

 

▼ 해월루에서 백련사 가는길

▼ 만덕산

▼ 백련사옆 녹차밭

 

 

 

▼ 백련사

 

 

 

▼ 백련사

 

▼ 백련사 대웅전

 

▼ 백련사옆 동백나무숲

 

▼ 백련사에서 다산초당 가는 길

▼ 고산이 새긴 정석

▼ 다산초당에서 유물전시관 가는 길

 

▼ 두충나무숲

▼ 두충나무숲

 

▼ 고산유물전시관

 

 

 

다산에 대하여...


   자 귀농(歸農), 호 다산(茶山), 시호 문도(文度)인 정약용(丁若鏞 ; 1762~1836)은 18세기 실학사항을 집대성한 한국 최대의 실학자이다.

높은 인격과 탁월한 학문역량, 한없는 애국 애족심을 바탕으로 개혁과 개방을 통해 부국강병(富國强兵)을 주장한 인물이다.

75세에 하직할 때까지 국가개혁과 부패방지를 위해 노력한 분이었다.

 

정조의 총애를 받았으나 정조 승하 후 긴 유배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1800년 정조 사후 정권을 장악한 벽파는 남인계인 시파를 제거하기 위해 1801년 2월 천주교도들이 청나라 신부 주문모를 끌어들이고 역모를 꾀했다는 죄명을 내세워 신유사옥을 일으켰다.

 

이때 다산은 이가환, 이승훈 홍낙민, 그리고 형 약전, 약종 등과 함께체포되었으며 2월 27일 출옥과 동시에 경상북도 포항 장기로 유배되었다.

그해 11월 전남 강진으로 이배되었는데 그는 이곳에서의 유배기간 동안 독서와 저술에 힘을 기울려 그의 학문체계를 완성했다.

특히 1808년 봄부터 머무른 다산초당은 목민심서 등 600여권의 책을 저술하던 곳으로 바로 다사학(茶山學)의 산실이었다.

이곳에는 다산초당, 백련사 등 많은 문화유적지가 산재되어 있는데  특히 다산초당은 다산 정약용 선생이 10년 동안(1808-1818) 유배생활을  했던 곳이기도 하다.

다산 정약용 선생은 조선 말기 당대 실학을 집대성한 대학자이다.

강진에 유배되어 18년 간 귀양생활 중, 8년 간을 강진읍 동문 밖에서  머물다 이곳으로 거처를 옮겼다.

 

이곳에서 후진을 가르치고, 저술에 전념하여 '목민심서' '경세유표' '흠흠신서' 등 저서를 완성했다.

만덕산 정상 남쪽 골짜기의 백련사 주변에는 1.3ha에 걸쳐서 1,500여 그루의 동백나무가 자라고 있는데, 특히 절 앞에 많다.

천연 기념물 제151호로 지정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