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TOUR(여행 및 출사)/# (T·U)서울市

[서울]창경궁 가을

마하칼라 2025. 12. 7. 12:07

2025. 11. 21.

나홀로 쉬엄쉬엄 산책하면서

 

붉은 시간의 틈으로 걸어 들어가다: 창경궁의 늦가을 산책

2025년 11월 21일, 서울의 시간이 멈춘 곳

도심의 빌딩 숲에서 불과 몇 발자국을 옮겼을 뿐인데, 공기의 밀도가 달라졌다. 귀를 때리던 자동차 경적 소리는 어느새 바스락거리는 낙엽 밟는 소리에 묻혔다. 여행이라는 것이 꼭 비행기를 타고 먼 타국으로 떠나는 것만은 아니다. 내가 발 딛고 선 이곳의 계절을 온전히, 그리고 깊이 있게 응시하는 것. 그것이 오늘 내가 창경궁을 찾은 이유다.

 

 

하늘을 가린 붉은 휘장, 고궁의 숲길

발길을 옮길 때마다 탄성이 터져 나온다.

고개를 들어 올려다본 하늘은 파란색보다 붉은색이 더 많다. 붓으로 칠해도 이렇게 선명할 수 있을까.

단풍나무와 은행나무가 서로 경쟁하듯 뿜어내는 색채의 향연은 마치 불이 붙은 듯 강렬하다.

 

관덕정

 

오래된 정자(관덕정) 주변으로 뻗은 가지들은 세월의 무게를 견디며 기어이 가장 화려한 옷을 입었다.

햇살이 나뭇잎 사이로 부서져 내릴 때마다, 붉은색은 투명한 주홍빛이 되었다가 다시 짙은 핏빛으로 변모한다.

그 찰나의 빛놀음을 보고 있자니, 카메라 셔터를 누르는 손길조차 조심스러워진다.

이 숲에서는 시간도 붉게 물들어 천천히 흐르는 듯하다.

 

 

백색의 온실, 그리고 붉은 프레임

춘당지를 지나 하얀 뼈대의 대온실(大溫室) 앞에 선다.

100년이 넘는 시간을 간직한 이 서양식 유리 건물이 고궁의 가을과 이토록 잘 어울릴 줄이야. 투명한 유리에 비친 울긋불긋한 단풍은 차가운 건축물에 따뜻한 생기를 불어넣는다.

고즈넉한 한옥의 곡선과 날렵한 온실의 직선, 그 사이를 채우는 자연의 붉은색. 이 이질적이면서도 조화로운 풍경 앞에서 나는 한참을 서성였다.

 

물 위에 그려진 데칼코마니, 춘당지(春塘池)

숲길을 지나 마주한 춘당지는 창경궁 가을의 하이라이트다.

바람이 잠시 숨을 고르는 순간, 연못은 거대한 거울이 되어 세상을 반전시킨다.

물 위에도, 물 아래에도 가을이 있다.

연못 가장자리를 둥글게 감싼 붉은 단풍과 사시사철 푸른 소나무의 색 대비는 계산된 조경이라기보다 자연이 빚어낸 완벽한 우연에 가깝다.

 

수면 위로 비친 나무들이 물결에 살짝 일렁일 때면, 마치 유화 물감이 번지듯 몽환적인 풍경을 자아낸다.

저 물속 깊은 곳 어딘가에 조선의 가을이 그대로 수장되어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엉뚱한 상상을 해본다.

 

창경궁의 가을은 유난히 짙고 깊다.

바쁜 일상에 쫓겨 계절이 오고 가는 줄도 몰랐던 나에게,

붉게 타오르는 단풍은 말없이 위로를 건넨다.

"잠시 멈추어 서도 괜찮다"고.

2025년의 늦가을 오후, 창경궁에서 나는 여행자가 되어 계절의 절정을 만끽했다.

이 붉은 잔상이 눈꺼풀 안쪽에 문신처럼 새겨져,

다가올 겨울의 추위도 거뜬히 이겨낼 수 있을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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