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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산사

마하칼라 2020. 11. 8. 20:01

 

 

금산사

2020. 11. 07.(토)

 

 

금산사 단풍

모악산 남쪽 자락에 자리 잡은 금산사는 호남 미륵신앙의 도량이다.

더넓은 경내에 국보 제82호로 지정된 미럭전을 비롯하여 노주, 석련대, 오층석탑, 혜덕왕사 진응탑비, 당간지주, 석종, 육각다층석탑, 석등 등 많은 보물과 문화재를 간직하고 있으며, 대적광전, 대장전, 명부전, 나한전, 일주문, 금강문, 보제루 등의 건물과 심원암, 용천암, 청련암 등 부속 암자를 거느린 거찰이다.

 

 

 

모악산과 금산사라는 이름은 큰 산을 뜻하는 고어 엄뫼, 큼뫼에서 비롯했다고 한다. 한자가 들어오면서 엄뫼는 어머니의 뫼라는 뜻의 모악으로, 또 큼은 금(金)으로, 뫼는 산(山)으로 적게 되었다는 것이다. 

 

온통 평야인 이 지역에서, 옛날부터 이 산의 존재가 외경의 대상이 되어왔음을 추측할 수 있다.

금산사는 백제 법왕 원년(599)에 임금의 복을 비는 사찰로 처음 지어졌다. 

창건 당시에는 소규모 사찰이었으나 신라 혜공왕 2년(766)에 진표율사에 의해 중창되면서 대가람의 면모를 갖추었다.

 

이때 진표율사는 미륵장륙상을 조성하여 미륵전에 모셨고, 금당 남쪽 벽에는 미륵보살이 도솔천에서 내려와 자기에게 계법을 주던 모습을 그렸다고 한다. 그 이래로 금산사는 미륵신앙, 즉 신라 오교의 하나인 법상종의 근본도량으로서 이 지역 불교 문화의 중심지가 되었다.

 

따라서 금산사에는 대웅전이 없고 미륵전에 있는 미륵불이 주불이며 석가불은 대장전에 따로 모셔져있다.

한편, 스스로 미륵임을 자처했던 후백제 왕 견훤이 이 절을 자기의 복을 비는 원찰로 삼고 중했다는 설도 있다.

견훤은 말년에 넷째 아들인 금강에게 왕위를 불려주려다가 맏아들인 신검을 비롯해 양검, 용검 등 아들들에게 붙잡혀 금산사에 유폐되기도 했다. 

 

신검은 아버지를 금산사에 유폐하고 금가을 죽인 후 왕위에 올랐다. 석 달 동안 유폐생활을 하던 견훤은 감시자들에게 술을 먹이고 금성(지금의 나주)으로 도망 쳐 왕건에게 투항하고 자기 아들을 쳐줄 것을 청했다. 

 

왕건이 마침내 그이 아들들을 처 후삼국을 통일한지 며칠 만에, 견훤은 착잡한 번민과 울화에 싸여 등창이 나서 논산시 여산에 있던 황선사에서 죽었다.  

 

 

금산사 위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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