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H·K)서울圈

[서울]한양도성 성곽의 歷史와 文化를 간직한 북악산

마하칼라 2013. 11. 23. 19:43

 

 

 

 한양도성의 역사·문화와 소통할 수 있는 서울성곽길   

 

* 언제 : 2013. 11. 23.(토)

* 날씨 : 맑음, 미세먼지가 끼여 원경은 불량

* 누구와 : 경운회 회원들(경우, 대용, 종현, 자문, 명준, 정식)과 함께

* 코스 : 와룡공원~말바위안내소~숙정문~곡장~청운대~1. 21사태 소나무~백악산(북악산)~창의문

 ※ 지하철 3호선 안국역 2번출구앞에서 만나 마을버스 2번을 타고 와룡공원까지 이동.(춘식,찬일,복식 3명 불참) 창의문에서 2010버스로 안국동까지

 '만수면옥'에서 오찬 후, 인사동 귀천(歸天) 전통찻집에서 차 한잔씩 마시고 헤여짐

 

▽ 들머리

 

▽ (1396년완공)서울성곽

 

▽ 서울성곽

 

 

 

 

 

▽ 말바위안내소 가는 길

 

▽ 출입증 신청

 

▽ 출입증신청

 

▽ 말바위 안내소옆 성곽

 

▽ 말바위 안내소옆 성곽

 

 

▽ 말바위안내소

 

 

 

 

▽ 숙정문

 

▽ 숙정문

 

 

▽ 숙정문옆 성곽

 

 

 

 

 

▽ 북악산 팔각정을 배경삼아

 

▽ 숙정문옆에서 단체로 기념촬영

 

 

▽ 당겨서 잡은 삼청각

 

▽ 숙정문

 

 

 

▽ 촛대바위앞

 

 

▽ 곡장에서 본 북한산 보현봉

 

 

 

 

 

 

 

 

 

 

 

 

 

 

 

▽ 1. 21. 사태 소나무 안내판

 

▽ 1. 21. 사태소나무

 

 

 

 

 

▽ 북악산(백악산)정상

 

 

 

 

 

 

 

 

 

▽ 북악산 정상에서 본 인왕산

 

▽ 북악산 정상

 

▽ 정상에서 하산

 

 

▽ 창의문으로 하산

 

▽ 창의문으로 하산

 

▽ 창의문으로 하산

 

▽ 창의문

 

▽ 창의문

 

▽ 창의문

 

▽ 창의문에서

 

 

 

 

▽ 창의문안내소

 

▽ 창의문앞

 

 

 ▽ 인사동 '귀천' 전통찻집

 

 

 

 

 

 

▽ 인사동 골목의 전통찻집 '귀천'

※ 문화의 거리 인사동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골목안에 있는 '귀천'(歸天) 찻집을 찾아 봤을 것이다. 천상병 시인의 부인 목순옥 여사(2010년 작고)가

    1985년 문을 연  문인들의 사랑방인 귀천이  문학의 산실역할을 하고 있다.  천상병의 시 '귀천'과 동명이다.(현재는 목순옥 여사 오빠의 딸이 운영)

 

 ▽ 인사동 인파

 

▽ 인사동

 

▽ 대학생 발표 동아리 회원(다이어트에 대해 발표)

 

▽ 발표듣는 청중

 

 

▽ 대학생 발표  듣는 청중 

 

▽ 인사동 인파

 

 

 

서울성곽(사적 제10호)

 

 1392년 개성 수창궁(壽昌宮)에서 조선왕조를 개국한 태조는 즉위한 지 한달도 못되어 한양천도 계획을 명하고 태조 4년(1395)경복궁, 종묘, 사직단의 건립 완성되자 곧바로 정도전(鄭道傳)이 수립한 도성축조 계획에 따라 서울성곽을 수축하기 시작하였다.

 

서울성곽은 북악산(432m), 낙산(125m), 남산(262m), 인왕산(338m)을 잇는 총 길이 18.2km로 평지는 토성, 산지는 석성으로 계획되었다.

이 방대하고 시급한 사업을 농한기에 완성하기 위하여 이듬해인 1396년 1, 2월의 49일동안 전국에서 11만 8천명을 동원하여 성곽의 대부분을 완공하였고, 가을 농한기인 8, 9월의 49일동안에 다시 79,400명을 동원하여 봄철에 못다 쌓은 동대문구역을 완공하고 4대문과 4소문을 준공하였다.

 

그후 27년이 지나 세종은 서울성곽을 전면 석성으로 수축하는 대대적인 보수 확장사업을 벌여 세종4년(1422)12월 겨울농한기에 전국에서 약 32만명의 인부와 2,200명의 기술자를 동원하여 완공하였다. 당시 서울의 인구가 약 10만 명 것을 감안하면 엄청남 공사였고, 사망자만 872명에 달했다.

 

이것이 지금 서울성곽의 골격이다.

 

이후 서울성곽을 재정비했다 숙종 30년(1704)까지 260년간 서울성곽은 부분적인 보수만 있었을 뿐 큰 붕괴는 없었다.

 

1899년 서대문과 청량리 사이 전차를 부설하면서 동대문과 서대문 부근의 성곽 일부가 헐려 나갔고, 이듬해는 용산과 종로 사이 전차부설을 위해 남대문 부근을 철거하게 되었다.

일제강점기에 들어서면서 서대문과 혜화문(동소문)이 헐리며 사실상 서울의 평지성곽은 모두 철거되어 오늘날에는 총 길이 18.2km 중 산지 성곽 10.5km만 남게 되었다.

 

  서울성곽 탐방지도

 

 

 

▽ 지도를 클릭하면 크게 볼 수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