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길도 에서 담아 온 아름다운 풍광
* 언제 : 2012. 3. 11.(일)
* 누구와 : 옆지기와 둘이서 싱글벙글산악회 회원들과
* 날씨 : 구름, 눈발이 날리고 바람이 불어 추위를 느끼는 기온
* 일정 : 06:00분 숙소출발, 아침식사 후 화흥포항으로 이동
※ 완도 화흥포항에서 07:00출발, 노화도 동천항 07:40도착, 28인승 리무진 관광버스도 보길도로감, 11:20분 동천항출발, 화흥포항으로 귀항
▼ 완도 화흥포항 여객터미널
▼ 노화도행 선박
▼ 화흥포항 출발
▼ 전복양식장
▼ 일출
▼ 전복양식장
▼ 노하도 동천항터미널
▼ 동천항앞바다
▼ 낙서재주차장 이정표
▼ 낙서재주차장 이정표
▼ 징검다리
▼ 동천석실
▼ 동천석실에서 본 격자봉
▼ 동천석실에서 본 격자봉
▼ 동천석실
▼ 동천석실옆 연못
▼ 동천석실
▼ 동천석실
▼ 동천석실가는 길
▼ 멀리서 본 동천석실
▼ 낙서재 가는 마을 길
▼ 곡수당
▼ 낙서재
▼ 낙서재
▼ 세연정 연못
▼ 세연정(1992년 복원)
☞ 보길도의 관문인 청별나루에서 도보로 15분 거리에 고산 윤선도의 사적(사적 제368호)인 세연정이 반긴다.
세연정은 우리나라 조경유적중 특이한 곳으로, 고산의 독특한 발상이 잘 나타난 곳이다.
개울에 보(일명 굴뚝다리)를 막아 논에 물을 대는 원리로 조성된 세연지에서 어부사시사가 창작되었다.
연못 가운데에 있는 정자는 1992년에 복원된 건물이다.
▼ 세연정앞에서
▼ 세연정
▼ 세연정
▼ 세연정
▼ 세연정
▼ 세연정옆 마늘밭
▼ 세연정
▼ 세연정
▼ (산악회 회원)망끝전망대에서 무엇을 담을까?, 아련히 보이는 추자도.1...
▼ 망끝전망대(세연정에서 이곳 올때 눈이 휘날리었으나 도착무렵 그침)
▼ 동천항으로 입항하는 여객선(화흥포항으로 타고갈 선박)
▼ 화흥포항의 안내도
▼ 점심식사후 터미널앞에서
▼ 여객선터미널 앞 장보고 장군 기념상 안내석
▼ 장보고장군 기념상
고산 윤선도에 대해서...
고산 윤선도(1587:선조20∼1671: 현종12)는 서울에서 태어났으나 8세 때 큰집에 양자로 가게 되어 해남 윤씨 집안 대종을 잇는다.
그는 30세 되던 해 이이첨 일파에 대한 탄핵으로 함경도 경원으로 유배를 가게 되었고, 이때부터 유배와 은둔으로 이어지는 일생을 보낸다.
51세 되던 해(1637년) 왕(인조)이 청나라에 항복했다는 소식을 듣고 통분하여 세상을 등지고자 재주도로 향하던 중 보길도의 수려한 풍광에 매료되어 이곳에 정착하기로 하고 부용동 정원을 꾸미기 시작했다. 이듬해 난이 평정된 뒤에도 그동안 고초를 겪은 왕에게 문안드리지 않았다는 죄목으로 경북 영덕으로 유배되었다가 1년만에 풀려나기도 했다.
고산은 자연과의 친화를 통해 많은 문학작품을 창조했고, 풍수지리, 천문, 음악 등에도 매우 박식했다.
85세로 격자봉 산자락인 낙서재에서 일생을 마감하였으며 자신의 문학적 토양이었던 문소동 골짜기에 몸을 뉘였다.
고산 윤선도선생은 조선중기에 호남이 낳은 대시인(大詩人)이며, 조선조 시조문학을 마지막 장식한 대가로 알려진 분이다.
윤고산 선생은 자기를 포함한 주변에서부터 국가사회에 이르기까지 강한 실천의지를 지니었는데, 특히 노비, 어민, 농민, 빈자 등 여러 방면의 사회적 약자에 관한 관심이 높을 뿐 아니라 각 방면에 있어서도 상당히 높은 전문지식을 갖고서 이론을 폈다.
인생의 덕목(德目)을 벼슬에 두지 않고 수신(修身)과 근행(謹行) 및 적선(積善)에 두고 있고 인자한 행실과 검소절약을 제1의 덕목으로 가르치고 있다.
보길도는 인조(仁祖) 15년(1637) 51세 때 이곳에 들어와 여러 차례 출입을 하면서 별서(別墅)를 짓고 13년간 글과 정서를 닦으며 어부사시사(漁夫四時詞) 등 시가를 창작한 국문학의 산실(産室)이기도 하다.
격자봉(格紫峰) 밑에 낙서재(樂書齋)를 지어 주자학(朱子學)을 연구하고, 이 일대에 소은병(小隱屛), 낭음계(朗吟溪), 오운대(五雲臺), 독등대(獨登臺), 상춘대(賞春臺), 언선대(偃仙臺) 등 바위에 이름을 붙여 자연에 묻혀 자연과 대화하는 조경(造景)을 경영하였다.
또 낙서재의 건너 개울가에 연못을 파고 집을 지어 곡수당(曲水堂)이라 하고, 낙서재 건너 산 중턱 절벽 위에 한 칸 집을 짓고 동천석실(洞天石室)이라 하여 독서하며 선경(仙境)에 노닐었다.
계곡을 따라 동북쪽으로 내려가면 계간(溪澗)을 판석보(板石洑)로 막아 계담(溪潭)을 조성하고 물을 돌려 방지(方池)를 이룩하고 방지 옆에 단(壇)을 쌓고 세연정(洗然亭)을 지었다.
이곳이야말로 조선시대(朝鮮時代) 별서조원(別墅造園)의 아름다운 조영(造營)을 엿볼 수 있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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