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수궁과 서울광장
2015. 12. 18.(금)
구름끼고 흐림, 쌀쌀한 기온
광진문화원 사진반 회원들과 함께
덕수궁 정문 수문장 교대
1592년 임진왜란(壬辰倭亂)이 일어나자 의주로 피난 갔던 선조가 1년 반만에 한양으로 돌아왔으나, 한양의 모든 궁궐은 왜군에 의해 불타 없어져 머물 궁궐이 필요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당시 황화방(皇華坊)에 위치한 월산대군(月山大君) 후손의 집과 인근의 민가 여러 채를 합하여 임시 행궁(行宮)으로 삼고 '시어소(時御所)'로 머물게 되었으니, 이것이 훗날 덕수궁(경운궁)의 시작이었다.
선조는 임진왜란으로 소실된 궁궐을 재건하려 했으나, 당시의 궁핍한 국가재정 상황 등으로 뜻을 이루지 못하고 결국 1608년 2월 정릉동 행궁 정전(석어당 추정)에서 승하하고 만다. 선조의 뒤를 이어 이곳에서 즉위한 광해군은 1611년 창덕궁을 재건하여, 그해 10월 창덕궁으로 이어(移御)하면서 '경운궁(慶運宮)'이란 이름을 비로소 얻게된다.
1897년 8월 고종은 연호(年號)를 광무(光武)로 반포(頒布)하고, 10월 국호를 대한(大韓)으로 정한 뒤 원구단(圓丘壇)에서 황제 즉위식을 갖는다. 이처럼 경운궁의 또 다른 역사는 대한제국(大韓帝國)의 선포와 더불어 열강들의 틈바구니 속에서 시작되었다.
경운궁은 고종이 본격적으로 임어하게 되면서 그에 걸맞는 궁궐의 격식을 갖추어 나갔지만, 1904년 4월 함녕전에서 비롯된 대화재로 인해 경운궁은 또 한번 큰 시련을 겪는다.
중화전을 비롯한 석어당, 즉조당, 함녕전, 궐내각사(闕內各司) 등 중심부에 있던 건물들이 모두 잿더미가 되고, 경운궁(덕수궁)은 이전의 모습을 크게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현재 석조전을 제외한 덕수궁의 모든 건물들은 이 이후에 재건되었으며, 그 규모도 대폭 축소되고 만다.
그러던 중 1905년 경운궁 중명전(重明殿)에서 소위 '을사조약'이 강제로 체결되고, 이에 고종은 을사조약의 부당함을 알리기 위해 1907년 7월 네덜란드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에 이상설, 이준, 이위종을 황제의 특사자격으로 비밀리에 파견하게 된다. 하지만 결국 이로 인해 1907년 8월 일제는 고종을 황제의 자리에서 강제 퇴위시키고, 순종이 경운궁 돈덕전(惇德殿)에서 황제에 오르게 된다. 황제에 오른 순종은 그 해 11월 창덕궁으로 이어(移御)했으며, 이로써 경운궁도 마침내 궁궐로써 그 기능과 생명을 다하게 된다.
이때 순종은 경운궁에 계신 태황제(太皇帝) 고종에게 '덕수(德壽)'라는 궁호(宮號)를 올리는데, 오늘날 덕수궁(德壽宮)이란 이름은 이렇게 얻게 되었다. 한편 덕수(德壽)란 궁호는 왕위를 물려준 '선왕의 덕과 장수를 기린다'는 뜻으로, 특정 고유명사로서가 아니라 물러난 선왕에게 올리는 궁호의 보통명사격인 셈이다. 1919년 고종이 함녕전에서 갑자기 승하하자, 덕수궁은 주인이 없는 궁궐이 되어 일제에 의해 조직적으로 훼손되기 시작한다.
광복을 맞으면서, 덕수궁 내의 석조전이 새로운 역사 문화의 장으로 활용되었다. 그 해 10월 해방기념 미술전람회가 개최되었으며, 그 이듬해 1월에는 미소공동위원회 임시회의가 개최되기도 하였다. 또한1948년부터 1950년 6.25가 발발할 때까지 UN한국위원단에서 석조전을 사용하였다.
1954년 6월에는 석조전을 국립박물관으로 처음 사용하였으며, 1955년에는 석조전 건물의 일부를 육군 공병단에서 수리 복원하였다.
1961년 10월 정식관리기구인 덕수궁관리사무소가 설치되어 관리를 전담하게 되었다. 그 해 11월 서울특별시 도시계획에 의한 제 1차 도로확장공사로 시청 쪽 담장이 철거되고 철책으로 대체되었다.
그 이듬해에는 7월 덕수궁을 사적 제 124호로 지정하였다. 다시 1968년 5월에는 서울시 도로확장공사로 시청쪽 도로에 편입되어 설치된 철책을 철거하고 담장을 설치하였다.
또한 그 해 7월에는 남대문경찰서 태평로파출소가 덕수궁 동북담모서리에 신축되었으며, 이 공사로 덕수궁 대지 25평이 편입되었다. 7월 15일에는 담장 이전공사로 담장 만을 궁 내부로 이전하고 대한문(大漢門)은 원위치 도로상에 폐쇄 고립됨. 당초 당 궁 총면적 20,114평 중 1,977평이 도시계획 등에 의해 편입되어 18,137평이 보존관리 면적으로 남게 되었다.
그 이듬해에는 덕수궁에서 관리하여오던 미술관을 국립박물관으로 이관하였다.(대통령령 제3525호) 1970년 8월에는 도로상에 폐쇄 고립된 대한문(大漢門) 이설공사를 착공하여 1971년 1월 2일 이설 준공되었다. 1973년부터86년까지 석조전 서관은 국립현대미술관으로 사용되었으며, 98년 8월 석조전 서관이 다시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 분관 개관하였다.
1992년 12월 덕수궁 관리사무소의 직제가 궁중유물전시관으로 확대 개편되었다. 궁중유물전시관은 덕수궁관리는 물론 5대궁궐 13개능원에 분산 소장되어있던 궁중유물을 한군데 집중 관리하게 되었으며,석조전에 일반인들을 위한 전시관도 개관하게 되었다.
드므
2005년 8월15일 궁중유물전시관은 국립고궁박물관으로 이전하였고, 덕수궁의 관리는 다시 덕수궁관리소에서 하고 있다.
시청앞
프라자호텔 빛가라짐
크리스마스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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