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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길림성 용정시 대성중학교(현 용정중)

마하칼라 2011. 8. 10. 15:37

 

선각자의 흔적을 담아서

 

 * 언제 : 2011. 8. 8.(월)

 * 날씨 : 구름낌, 더운 여름의 기온답게

 * 어디어디 : 길림성 안도현 이도백하 '백화림호텔'(8.7, 1박)~ 길림성 용정시 대성중(현 용정중)~연길시~도문시~흑룡강성 목단강시

  ※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도문시' 두만강변을 어둠이 짙게 깔린 후 도착하여 사진을 담을 수 없었음

 

 ↓ (8월7일, 1박)백화림호텔

 ↓ (이도백하 백두산 북파 입구)백화림 호텔

 

 

↓ 8.6.~8.9.까지 전 여정을 함께한 버스와 기사

 

 

 

 ↓백화호텔앞 백두산 가는 도로

 ↓도로변 꿀벌 판매소

 ↓장내삼 이식장소

 ↓장내삼 밭

 ↓장내삼밭에서 하산

 ↓북한한약판매소

 

↓북한 한약판매소 앞 전경

 ↓북한 한약판매소 옆 옥수수밭

 

 

 ↓용정시 (송이버섯)점심식사 식당

 

 

 

 ↓용정시 해란강

 ↓용정시 대성중학교(현 용정중) 윤동주 시비

 

 

 

 

 

 

 

 

 

↓대성중학교 교실

↓ 용정중학 교문

 

 

 ↓연길 보이차집

  ↓ 도문시내 야경 

 

↓도문시옆 두만강

 

 

 

 

  ♣  가곡 '선구자', 윤동주....

    

       백두산 아래 첫마을 이도백하의 '백화림'호텔에서 오전 7시 룡정시로 가기위해 버스에 몸을 실었다.

 그런데 일행중 3사람이 여행용 가방을 가이드한테 버스옆에서 실어 달라고 부탁했는데 싣지 않아 다른버스가 싣고 가벼렸다.

 그래서 가방을 찾기 위해 백두산 주차장으로 갔으나 찾지 못하고 시간만 낭비하고 룡정시로 예정보다 늦게 출발했다.(연길시에서 잃었던 가방을 받음)

 

 차창으로 '일송정'을 가이드 안내로 고개를 돌렸으나 도로에서 거리가 멀어 자세히 볼 수 없어 아쉬움이 남는다.

 당시 일본군이 우리 민족혼과 항일 의지를 꺾기 위해 독립투사들이 모이던 소나무를 총으로 쏴 죽였단다.

 지금은 우리 동포들이 백두산에서 25년생 소나무를 그곳게 이식해 놓았다고 한다.  

 

 현재의 소나무는 과거의 우리 독립투사들의 의지를  알기나 하는지?

 

 만주벌판에 한 가운데 있는 룡정시는 우리 동포들이 가장 많이 거주하는 연변자치주의 한 행정시로서 전체인구 3~40만명의 70%를 차지 하고 있단다.

 룡정시는 상해와 함께 과거 우리 독립투사들이 독립운동의 본거지 중 한곳으로 과거에는 '간도'라고 불렸던 곳이다.

 

 그 중심에 '윤동주'가 여전히 살아 숨쉬고 있었다.

 

 우리나라 대표 민족시인 중 한명으로 독립투사로 이름높다.

 룡정시는 윤동주 가족이 처음으로 정착한 곳이다. 윤동주는 이곳에 와 독립투사 등이 세운 은진중학교에 입학했다. 이후 평양을 거쳐 연희전문학교 문과를

 졸업했다.

 

 이후 1943년 7월 독립운동 협의로 후쿠오카 형무소에 수감되었다가 1945년 2월 16일 광복을 6개월 앞두고 그만 옥사했다. 유해는 고향인 룡정에 모셔졌다.

 

 룡정시에 들어 서자마자 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해 식당부터갔다.

 식사후 해란강을 건너 조금 가니까 윤동주의 학창시절을 엿볼 수 있는 곳 룡정중학교에 도착했다.

 현재 룡정중학교에 윤동주의 자취는 많이 사라졌지만 그가 공부하던 교실 등은 여전히 보존돼 방문객들에게 위안을 준다.

 

 다만 아쉬운 건 룡정중학교 내에 역사관은 그렇다쳐도 한글로 선명하게 써놓은 <윤동주 교실>에서는 사진촬영시 우리 돈(5,000원)을 받고 있어

 다소 아쉬움이  남는다. 물론 룡정중학교 장학금 등의 용도로 쓰여지기는 한다지만 어딘지 모르게 마음 한 구석이 편치 않았다.

 방문록(국적, 주소, 이름, 기부금액 기록)에 기부금을 쓰고 그 금액을 내는 것도 왠지 같은 맘이다.
 
 그 이유인 즉, 돈 몇 푼이 아까운 게 아니라 그런 것이 자칫 윤동주의 고귀한 정신에 누를 끼치지는 않을까하는 염려에서다.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해란강은 유유히 시간을 넘고 기억을 넘어 유유히 흘러 흘러만 가고 있었다.

 다시 해란강을 건너 연길시로 가는 우리의 이런 맘을 아는지 모르는지 버스는 열심히 달리기만 한다.

 연길시도 우리 동포(조선족)들이 많이 살고 있는 곳이다.  2010년말 현재 호적인구 495천명으로 이중 57.9%가 조선족, 나머지는 한족 등 타 민족이다

 

 연길에서는 여행에 지친 피로를 풀겸  집사람과 함께 침대가 2개있는 방에서 각각 '전신마사지'(1인당 30$)를 받고나서 보이찻집에서 차한잔

 마시고  길림성에서 마지막 방문지인 한반도의 맨 위쪽과 접해 있는 '도문시'로 향했다.

 도문시에서 두만강변(북한과 국경지대)을 둘러보며 뗏목타는 체험도 할 계획이었으나 도착이 늦어 어둠속에서 두만강뚝만 밝고 발길을 흑룡강성 목단강시로

 돌렸다.

  요녕성 심양공항 착륙할때부터 통화, 이도백하, 룡정, 연길, 도문시를 지나면서 창밖으로 본 밭에는 대부분 옥수수였다. 사이사이 다른 작물도 보였으나 극히

  일부분이다.

  수확한 옥수수중 제일 좋은 상품가치가 있는 것은 팔고, 중간정도 것은 먹고, 낮은것은 사료용으로 활용한단다.

  모든작업을 사람의 손으로 씨뿌리고 수확한하고 하니 참 고생이 많겠구나......그런데 조선족들도 이런 방법으로 옥수수 농사를 짓는다니. 왠지 맘이 ....... 

  북한 노동자들이 와서 일하면 품삯으로 현금을 주지 않고 현물(옥수수)로 준단다. 현금을 주면 탈북자금으로 사용할 염려 때문이란다....ㅉㅉㅉ

 

  ※ 중국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  자치주는 1952. 9. 3. 설립

      * 옌지[延吉], 투먼[圖們], 둔화[敦化], 허룽[和龍], 룽징[龍井], 훈춘[휘春] 등 6개 시와

        왕칭[汪淸], 안투[安圖] 등 2개 현으로 이루어져 있다.

      * 전체 인구 220만명정도 이고 11개민족이 거주, 조선족 비율은 41%이며 나머지는 한족, 만주족, 회족의 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