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덕궁과 창경궁의 아름다움을 담아서
* 때 : 2010. 6. 6.(일) 오후
* 누구와 : 옆지기와 둘이서
* 날씨 : 맑음, 초여름 더운 기온
* 어디로 : 돈화문(창덕궁 정문)~인정전~대조전~낙선재~창경궁 춘당지~옥천교~홍화문(창경궁 정문)
* 교통 : 지하철
▼ 돈화문 옆모습
▼ (돈화문) 창덕궁 정문
▼ 창덕궁 입장
▼ 창덕궁 내
▼ 돈화문 뒷모습
▼ 인정전
▼ 창덕궁 관람객
▼ (창덕궁음악회)고궁에서 우리음악 듣기
▼ 창덕궁음악회 관객
▼ 창덕궁음악회 사회
▼ 정재 '춘앵전' 무용-이주희, 박준규
▼ 낙선재 앞
▼ 낙선재 앞
▼ 대조전 앞
▼ 선정전 뒷뜰
▼ 희정전 앞
▼ 희정전 앞
▼ 창경궁 성종태실
▼ 성종태실비 및 태실
▼ (창경궁) 춘당지
▼ 춘당지
▼ 춘당지
▼ 춘당지의 원앙
▼ (창경궁) 대온실 앞
▼ 자생화단
▼ 산책로
▼ 백송
▼ 백송
▼ 산책로
▼ 명정전 정문
▼ 명정전 앞 옥천교
▼ (홍화문)창경궁 정문
창덕궁
[ 昌德宮 ] 1405년(태종 5) 지어진 조선시대의 궁궐.
• 지정종목 : 사적
• 지정번호 : 사적 제122호
• 지정일 : 1963년 01월 18일
• 소재지 :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 99 (와룡동 2-71) 사적 제122호로 지정되었다.
1405년(태종 5) 완공되었으며, 면적 43만 4877㎡이다.
태종(太宗)이 즉위한 후 1404년(태종 4) 한성(漢城)의 향교동(鄕校洞)에 이궁(離宮)을 짓기 시작하여 이듬해 완공하고 창덕궁이라 명명하였다.
그 후 계속 인정전(仁政殿)·선정전(宣政殿)·소덕전(昭德殿)·빈경당(賓慶堂)·여일전(麗日殿)·정월전(淨月殿)·옥화당(玉華堂) 등 많은 전당을 건립하였는데, 1412년 돈화문(敦化門)을 건립하여 궁궐의 면모를 갖추었다.
이 궁전은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는데, 1607년(선조 40)에 그 복구가 시작되어 1610년(광해군 2)에 중건이 거의 끝났으나, 1623년 3월에 인정전을 제외한 대부분의 전각이 실화로 불탔으므로 1647년(인조 25)에야 그 복구가 완료되었다.
그 후에도 크고 작은 화재가 여러 차례 있었는데, 특히 1917년 대조전(大造殿)을 중심으로 내전 일곽이 소실되어 그 복구를 위하여 경복궁 내의 교태전(交泰殿)을 비롯하여 강녕전 동·서 행각 등의 많은 건물이 해체 전용되었다.
창덕궁은 많은 재앙을 입으면서도 여러 건물이 비교적 잘 보존되어 왔는데, 1912년부터는 후원인 금원(禁苑)과 아울러 인정전을 관람할 수 있게 하였고, 8·15광복 후에도 창덕궁과 금원을 공개하고 있다.
창덕궁은 금원을 비롯하여 다른 부속건물이 비교적 원형으로 남아 있어 가장 중요한 고궁의 하나이다.
1997년 12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
[한국의 유네스코 문화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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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 명 |
등록연도 |
사 진 |
1 |
1995.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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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
1995.12 |
| |
3 |
1995.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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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
창덕궁 |
1997.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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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
1997.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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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
2000.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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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
2000.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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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
2009.0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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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
한국의 역사마을-하회와 양동 |
2010.0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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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경궁 [ 昌慶宮 ]
종 목 사적 제123호 명 칭 창경궁 (昌慶宮) 분 류 유적건조물 / 정치국방/ 궁궐·관아/ 궁궐 수량/면적 216,774㎡ 지정(등록)일 1963.01.18 소 재 지 서울 종로구 창경궁로 185 (와룡동) 시 대 조선시대 소유자(소유단체) 국유 관리자(관리단체) 창경궁
조선시대 궁궐로 태종이 거처하던 수강궁터에 지어진 건물이다. 성종 14년(1483)에 정희왕후, 소혜왕후, 안순왕후를 위해 창경궁을 지었다.
처음 지을 당시의 건물은 명정전·문정전의 정전과 수령전·환경전·경춘전·인양전·통명전 등의 침전 및 양화당·여휘당·사성각이 있었다.
조선시대의 궁궐중에서는 유일하게 동쪽을 향해 지어졌다.
처음에는 별로 사용되지 않다가 임진왜란 때에 경복궁·창덕궁과 함께 불에 탄 이후, 창덕궁과 같이 다시 지어져 조선왕조 역사의 중심 무대가 되었다.
숙종의 사랑을 받던 장희빈이 인현왕후를 독살하려는 못된 행동을 저지르다가 처형을 당했는데, 당시 희빈은 주로 취선당에서 생활하였다.
또한 영조는 아들인 사도세자를 뒤주에 가두어 죽이는 일을 저질렀는데, 세자가 갇힌 뒤주를 궁궐 안의 선인문 안뜰에 8일간이나 두었었다.
창경궁은 순종이 즉위한 후부터 많은 변화가 있었다.
1909년 궁궐 안의 건물들을 헐어내고 동물원과 식물원을 설치하였으며, 궁의 이름을 창경원으로 낮추기도 하였다.
그러다가 1984년 궁궐 복원사업이 시작되어 원래의 이름인 창경궁을 되찾게 되었고, 궐 안의 동물들을 서울대공원으로 옮기면서 벚나무 역시 없애버렸다.
장조·정조·순조·헌종을 비롯한 많은 왕들이 태어난 궁으로, 광해군 때 다시 지어진 정문·정전들이 보존되어 있으며, 옆에 있는 창덕궁과 함께 조선시대 궁궐의 역사를 살피는데 없어서는 안될 중요한 유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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