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천안문 만리장성
천안문 만리장성
*언제 : '07. 6. 6~6. 10.
* 누구와 : 경운회 회원들
* 여행코스 : 인천공항 ~ 북경~만리장성~텐진~장가계, 원가계~ 텐진~ 인천공항
북경 천안문 광장
천안문은 중국을 대표하는 역사적 상징이자, 수백년 역사의
목격자입니다.
명나라 영락제 시대인 1420년에 처음 세원진 이 문은
원래 '승천문(承天门)'이라 불렀으나 청나라 초기에 지금의 이름으로 바뀌었습니다.
'하늘의 뜻에 따라 평안을 이룬다'는 뜻을 담은
천안문은 황제의 위엄과 중화제국의 영광을 상징하는
출입구였으며, 수많은 역사적 사건의 무대가 되기도 했습니다.
천안문 광장
붉은 벽과 황금빛 기와, 웅장한 규모는 보는 이로 하여금
자연스레 고개를 들어 바라보게 합니다.
특히 중앙에 걸린 마오쩌둥 주석의 초상화는 천안문을 더욱
상징적인 공간으로 만들었으며,
오늘날에도 중국인의 정신적 구심점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천안문
천안문 앞 광장을 걸을 때면, 단순한 관광지가 아니라
수백 년 권력과 이상, 희망과 비극이 교차했던
역사의 흐름을 몸소 느끼게 됩니다.
이곳에 서서 바람을 맞으며 하늘을
올려다보는 순간, 개인이 아닌 하나의 시대와 마주하는
경건함이 가슴을 울립니다.
'보라빛 금지된 도시'라는 이름을 가진 이 궁성은 세계 최대 규모의
고대 궁전으로, 24명의 명·청황제들이 살았던 천자의 거처입니다.
약 14년에 걸쳐 지어진 자금성은 황금색 기와와 붉은 벽, 좌우로 대칭을 이루는
엄정한 구조로, '하늘의 뜻을 받든 인간'인 황제의
절대적 권위를 표현하고 있습니다.
자금성
자금성에 발을 들이는 순간, 긴 돌길을 따라 위풍당당하게 늘어선
대전들과 거대한 궁전군이 압도적인 스케일로 눈앞에 펼쳐집니다.
태화전(太和殿)을 비롯한 주요 건물들은 섬세하고
웅장한 건축미를 자랑하며, 하나하나가 당대 최고의 장인정신과
예술적 감각을 담아내고 있습니다.
자금성 후문 성곽
그러나, 단순히 화려함만이 전부가 아닙니다.
자금성 안에는 권력의 무게에 짓눌린 황제들의 고독과 수많은 궁녀와
신하들의 희비도 켜켜이 쌓여 있습니다.
좁고 깊숙한 골목과 수많은 문, 미로처럼 얽힌 건축물들을 걷다 보면,
이곳이 단지 찬란한 권력의 상징이 아닌, 인간사의
희로애락이 깃든 살아 있는 역사임을 깨닫게됩니다.
만리장성
"만리장성에 오르지 않은 자는 진정한 사내가 아니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만리장성은 중국을 대표하는 불멸의 유산입니다.
진시황제 시대에 최초로 축조되기 시작한 이 성벽은 수천 킬로미터에 걸쳐
험준한 산과 황량한 사막을 넘나들며 뻗어 있습니다.
만리장성
베이징(北京) 근교의 팔달령 구간은 가장 대표적인 접근성이 좋은 구간으로,
성벽위를 직접 걷다 보면 과거 수많은 병사들이 국토를 지키기 위해
견뎌야 했던 고난과 의지를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습니다.
만리장성
만리장성은 단순한 군사 방어시설이 아니라,
인간의 의지와 공동체 정신, 그리고 자연과 대결해 살아 남고자 했던
삶의 의지를 상징합니다.
거칠고 험한 지형을 따라 이어지는 성벽 위에 서서
사방을 내려다 보는 순간, 바람결속에 녹아든 수천 년의 숨결이 피부에 와닿습니다.
만리장성은 우리가 서 있는 오늘이 결코
당연한 것이 아님을, 한 시대를 넘어 이어진 수많은
노고와 꿈이 있었음을 조용히 이야기합니다.
만리장성
이화원
이화원은 중국 황실 정원의 극치라 할 수 있는 곳입니다.
원래 명나라 시기에 저어진 청의원을
청나라 서태후가 재건하면서 오늘날의 모습이 완성되었습니다.
이화원
'몸과 마음을 편안히 하며 늙어가라'는 뜻을 지닌 이화원은,
황제가 더위를 피하고 휴식을 즐기기 위해 조성한 공간이었습니다.
배를 타고 곤명호를 유유히 건너거나, 만수산 정상에 올라 이화원의
전경을 내려다보면, 황제들이 이곳을 얼마나 사랑했는지
실감하게 됩니다.
자연을 존중하며 인간의 손길을 얹은 조화로움 속에서
이화원은 단순한 정원을 넘어 '이상향'을 꿈꾸었던 황실의
마음을 고스란히 전하고 있습니다.